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전선 (문단 편집) === 북부 전선 전황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키이우 전투)]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수미 전투)] 러시아는 [[키이우]]의 점령 및 친러 정권 수립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북부에 주력을 투입하여 개전 하루도 되지 않아 키이우 시 북부에 도달했다. 그러나 키이우는 기본적으로 대도시이기 때문에 [[시가전]]이 발생할 수밖에 없으므로 오히려 점령하기 매우 까다롭고,[* 시가전은 기갑부대가 가장 활약하기 힘든 전장이다. 이 때문에 내로라하는 강대국들도 자국군을 시가전에 투입하는 것을 가능하면 피하려 든다. 실제로 [[체첸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1차에서 기갑부대를 시가전에 투입했다가 큰 피해를 보자 2차에서는 이를 교훈으로 공습과 포격으로 초토화시킨 다음 기갑 부대를 보병과 합동하여 투입해서 승리할 수 있었다. 사실 다 떠나서, 러시아 자신들의 전신이었던 소련이 스탈린그라드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해보면 이미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의 수도답게 무려 300만 명의 민간인들이 거주하는 곳이므로[* 일단 3월 중순 무렵에는 200만 명이 대피하고 100만 명 가량의 시민이 남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하지만 300만 명이 생활하던 인프라 자체는 여전히 남아있으며 남은 자들은 대부분 항전을 각오한 이들이기에 시가전의 까다로움 자체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민간인 사상자들이 반드시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키이우에서는 정규군뿐 아니라 시민들조차 민병대를 창설하여 싸우고 있기에 단기간에 함락시키기가 결코 여의치 않다.[[https://www.youtube.com/watch?v=ifhD-ZGChr8|#]][* 아예 해외에 거주하던 우크라이나인들조차 우크라이나로 돌아와서 전쟁에 참여하고 있으며, 심지어 여성들과 외국인 의용군까지 민병대에 참여하고 있다.] 키이우 공략을 위해 시가전에 특화된 체첸군까지 투입했지만, 오히려 키이우로 이동하던 도중에 부대가 박살 났다.[[https://www.timesofisrael.com/ukrainian-forces-destroy-convoy-of-56-chechen-tanks-kill-general-near-kyiv-report/|#]] 벤 하지 미군 예비역 중장은 우크라이나가 강력한 결사 항전 태세를 갖춰 예상보다 잘 싸우고 있으며, 오히려 러시아가 점점 좌절하고 있기에 수도가 함락되지 않을 거라고 분석했다.[[https://thehill.com/policy/international/595974-russia-grows-frustrated-against-ukrainian-resistance|#]] 결국 이는 현실이 되었고, 초기 계획대로 3일 안에 키이우를 함락시키긴커녕 포위조차 못한 채로 장기전에 돌입했다. 수미 주의 경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에 점령과 탈환을 반복하고 있으며 수미 시는 우크라이나군이 방어하고는 있으나 공습이 계속되고 있다. 3월 12일, 러시아군이 키이우로부터 25km 떨어진 지점까지 육박했으며, 우크라이나군은 키이우를 요새화하고 결사 항전 태세에 들어갔다.[[https://www.mk.co.kr/news/world/view/2022/03/230966/|#]]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전선이 교착되면서, 3월 18일~19일 경에는 키이우에 접근한 러시아군이 '''참호를 파 방어전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이에 북부 전선의 우크라이나군은 기다렸다는 듯이 공세로 전환해 점령지 수복 및 러시아군의 허리를 끊기 시작했고, 키이우 북서쪽에선 아예 우크라이나군의 역포위까지 시작되었다.[[https://www.understandingwar.org/backgrounder/russian-offensive-campaign-assessment-march-22|#]] 게다가 동쪽으로는 55km씩이나 전진할 정도로 러시아군을 밀어냈다.[[https://goodwordnews.com/ukrainian-military-forces-and-russian-troops-east-of-kyiv-retreat-55-km-from-the-city-center/|#]] 결국 4월 2일 키이우에서, 4월 4일에는 수미와 체르니히우에서 우크라이나군이 승리하면서 점령당했던 영토를 모두 수복했고, 북부 전선은 우크라이나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벨라루스가 계속 친러 행보를 유지하면서 벨라루스 참전 발언을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고 러시아군도 아직 벨라루스에 주둔하고 있다보니 다시 북부 전선 침공 가능성이 있어서 수비전력을 최전선으로 전부 보내지 못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